저는 늘 긍정적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속으로는 많은 상처를 삭히면서도 뚝심 있게 버텨왔고, 어느 순간부터는 제 인생을 강력하게 바꾸고 싶다는 열망이 커졌습니다. 그래서 3년 전부터는 담배도 끊고 책을 읽고 운동하며 자기계발에 힘써왔습니다. 작은 변화라도 쌓아가면 분명 제 인생이 달라질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혹시 내 이름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 이름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저희 집은 가난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다섯 살 무렵부터 일을 하지 않으셨고, 엄마 혼자 설거지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셨습니다. 아버지는 돈을 벌지 않고 집안일만 하셨는데, 어릴 적부터 그 모습은 제게 큰 혼란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의 이혼으로 엄마는 재혼을 하셨고, 아버지는 저를 ‘엄마를 닮았다’며 미워하셨습니다. 따뜻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늘 구박 속에 자라다 보니 집에는 정을 붙이지 못했고, 결국 친구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경제적 지원이 없어 중학교 3학년 때부터는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를 다녔고, 어렵게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그래도 어머니가 용돈을 보태주셨는데, 그만큼 저에게 바라는 게 많으셨습니다. 사랑보다는 경제적으로 지원한 만큼 보상을 받고 싶어 하셨던 것 같습니다. 제 명의로 대출을 하자거나, 제 이름을 빌려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려 하신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월 200만 원을 받으며 자취하는 상황이라 부모님께 도움을 드릴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동생들의 용돈이나 병원 문제를 저에게 떠넘기셨고, 스스로의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서 저에게 ‘가장의 역할’을 강요하셨습니다. 결국 가족 모두의 기둥 역할을 제가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항상 면접에서 실패한 적이 없을 만큼 성실히 인정받았고, 실제로 일도 잘한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대우는 달랐습니다. 일은 남들보다 훨씬 많이 시키면서도 급여는 늘 최저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첫 직장에서 그랬고, 지금 다니는 직장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좋아한다, 믿는다’는 말은 자주 듣지만, 현실적인 보상은 따라오지 않았습니다.
인간관계도 비슷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저를 좋아하고 다가왔지만, 그 끝은 늘 외로움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고민이나 비밀을 저에게 쏟아내며 의지했지만, 정작 제가 힘들 때는 곁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는 늘 퍼주기만 하고, 도움은 받지 못했습니다. 가족, 직장, 친구 사이 모두에서 ‘내가 너에게 이렇게 해줬으니 고맙지?’라는 식의 은근한 압박을 많이 받았고, 제 몫은 늘 뒷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문득 제 이름이 ‘은혜(恩惠)’라서 사람들이 저에게 ‘은혜를 알아라’라는 식으로 행동하는 건 아닌가 싶을 때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저에게 10을 가져가면서 제가 1을 받으면, 그 9마저 돌려달라는 상황이 반복됩니다. 제 인생에는 왜 이렇게 돈이 남지 않고, 왜 이렇게 사람들 때문에 힘든 일이 많으며, 늘 이용만 당하고 보답은 받지 못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앞으로 행복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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