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전화가 왔다.
"여기는 서울인데요, 성민경 선생님 계십니까?"
40대 중반의 남자 목소리였다. 오늘 꼭 선생님을 찾아뵙고 싶은데 사무실에 계시냐고 묻는 것이었다.
오전에는 여성 잡지사 기자와 인터뷰가 있고 오후부터는 사무실에 있다고 하니까 새마을 열차 편으로 내려가니까 사무실을 찾을 수 있도록 약도를 상세히 가르쳐 달라고 했다.

'동대구 역에 내려서 택시를 타고 섬유회관 앞에 내려서 섬유회관 오른쪽을 보시면 아디다스 옷 매장이 있습니다. 섬유회관과 아디다스 옷 매장 사이에 약간 안쪽으로 4층 건물에 '한국 좋은 이름 연구소'라는 상호가 크게 걸려 있다'고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약 5시간 후 훤하게 생긴 40대 중반의 아저씨와 40대 초반의 아주머니 한 분이 오셨다. 이 두 분은 서로 부부라고 했다.

아주머니가 하는 말이 오늘 선생님을 만나 운명을 바꾸려고 서울에서 먼 길을 마다 않고 내려왔다고 했다. 어차피 상담을 하러 서울에서 이렇게 먼 길을 오셨으니 차근차근 이야기를 하라고 했다. 남편이 말을 하는 것이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건설업을 하여 수 십억의 재산을 벌어 남부럽지 않게 살고 돈이 없어 고생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왜 돈이 없는지 이해가 안 갔다고 했다. 고등학생과 중학생의 자녀가 있는데 방학만 되면 몇 백만 원짜리 외국 유학을 보냈다고 했다.

이렇게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지내다가 작년부터 건설업의 경기 침체와 미 분양사태로 자금 압박을 받아 몇 달 전부터 부도가 터졌다고 했다. 지금은 수습이 불가능할 정도로 부도금액이 많다고 했다. 부도가 나니까 잡히지 않으려고 전국을 돌아다녀 이제는 지치고 피가 마를 지경이라고 했다. 몇 번 야간에 이사를 하여 다른 곳으로 가보았지만 아이들 학교로 찾아와 아이들에게 너희 부모를 찾아내라고 고함을 지르는 바람에 아이들이 학교 가기 싫어 가출까지 했다고 한다.

"선생님! 지금 우리 가정생활이 이렇습니다. 가장으로서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주위 사람을 볼 면목이 없습니다. 오늘 선생님을 찾아온 이유는 작년 여성 잡지에 이름 석자를 가지고 운명을 바꾸는 분으로 소문이 났기에 저도 이름을 바꾸면 운명이 달라질까 혹시나 하고 찾아왔습니다."

이름을 바꾸기 전에 이름 감정을 했다.
"본인은 초년에는 부모의 덕도 있고 재물 운도 많이 따르는 이름이나 40대 중반 이후에는 일시적인 성공을 거두나 크게 실패하는 불행한 이름으로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몇 년 전에만 이름을 바꾸어서도 이번 같은 불행은 없었을 것입니다." .

나의 말을 모두 듣고 있던 부부가 옛날처럼 잘 살 수 있는 이름을 꼭 지어달라고 간곡한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너무 간곡한 부탁을 하기에 정말로 좋은 이름을 지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서울로 올라가세요. 좋은 이름을 지어 등기로 부쳐주겠다고 했다. 며칠을 연구하여 좋은 이름을 지어 등기로 보내고 이름을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약 1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서울에서 전화가 왔다. 1년 전에 이름을 지어준 사람이었다. 선생님이 지어준 이름을 가지고 유통회사를 만들었다고 했다. 유통회사는 1년 만에 사업이 잘 되어 직원이 25명이나 되고 한 달 매출액도 엄청나다고 했다. 이제 건설업으로 날린 돈을 선생님이 지어준 이름 석자로 많은 돈을 다시 벌 수 있어 꿈만 같다고 했다. 내일 업무차 내려갈 때 선생님을 꼭 찾아뵙겠다고 했다. 나는 성명학을 연구하면서 내가 지어준 이름을 사용하여 잘되는 사람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