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어느 날, 서울에서 한 아주머니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찾아왔다.
아이는 이제 겨우 20개월. 너무도 늦게 얻은 귀한 자식이라며, 이름 감정을 꼭 부탁한다고 했다.
나는 이름을 감정한 결과를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잠시 말문이 막혔다. 차마 쉽게 꺼낼 수 없는 이야기가 결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재촉했다. “선생님, 아이 이름은 어떻습니까?”
나는 조심스레 부탁드렸다.
“지금부터 제가 드리는 말씀이 너무 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실을 말씀드려야 하니, 기분 나빠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십시오.”
그리고 마침내 결과를 전했다.
“이 이름으로는 아이가 두 살을 넘기지 못합니다.”
순간, 어머니의 눈가가 무너졌다. 그녀는 흐느끼며 말했다.
“선생님… 사실 이 이름은 저희 부부가 직접 책을 보며 지어준 이름입니다. 그런데 이름을 지은 이후부터 아이는 늘 아팠습니다. 병원을 매일 다녀도 낫지 않고, 어떤 약도, 어떤 민간요법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며칠 전, 결국 병원에서 뇌종양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선생님께 마지막 희망을 걸고 찾아온 겁니다. 제발 아이가 살 수 있는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수술을 마치고 꼭 이름을 바꾸겠습니다.”
나는 그저 묵묵히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절박한 마음을 깊이 새길 수밖에 없었다.
며칠 뒤, 아이가 수술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하지만 그 후로는 소식이 닿지 않았다.
지금도 나는 그 아이의 안부가 궁금하다. 얼굴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그 20개월 된 아이가, 기적처럼 살아남아 지금은 건강히 자라고 있기를… 나는 간절히 기도한다.
시대가 바뀌며 과학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그러나 역학은 수백 년 전의 원리 그대로다. 문제는, 그 오래된 틀을 그대로 좇으며 ‘이름이나 사주팔자가 운명을 100% 지배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이름을 짓는 일은 단순한 계산이나 점괘가 아니다. 그것은 부모의 가슴으로, 학문적인 양심으로, 그리고 사람을 향한 사랑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작명가는 남의 인생을 예언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 부모, 내 자식의 이름을 짓는다는 각오로 정성과 진실을 다해야 한다. 그리하여 진실한 이름 연구가와 진실한 부모가 만날 때, 그 이름은 후손 대대로 빛나는 보물이 될 것이다.
나는 오늘도 다짐한다. “21세기 최고의 양심적인 이름 연구가로 살아가겠다.” 한국좋은이름연구소를 찾아오는 모든 이들에게 따뜻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상담하고, 이름을 통해 가정과 사업에 새로운 희망을 드리겠다고.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의 삶에도, 그 이름처럼 복된 행운이 가득하기를 기원한다.
(저작권 : 한국좋은이름연구소 성민경 이름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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